虛堂 박의서 교수

저서

사진 자료실

애향일기

어처구니 있는 막국수 체험 박물관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3-03 19:12
조회
127
http://m.kwnews.co.kr/


<2화>어처구니 있는 막국수체험박물관

역마살 탓인지 살아오면서 직장도 여러 번 옮기고 이사도 자주 한 편이다. 심지어 해외 주재 근무도 십여 년 하고 해외여행도 팔십여 개국을 넘겨 했으니 가히 지구촌 노마드라 할만하다. 그러나 춘천에 내려와 양지바른 맥국 명당, 신북에 둥지를 틀었으니 아주 뿌리를 내리면 좋으련만, 인생사 두고 볼 일이다.

춘천 맥국 터에 정착하고 보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중 하나가 해설을 위한 출퇴근이 매우 용이하다는 것이다. 일곱 문화 해설지 중 다섯 곳이 이 지역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막국수체험박물관은 걸어서 30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내 생애 가장 가까운 직장이다.

춘천막국수박물관 오가는 길은 율문천을 따라 걸어야 한다. 율문천은 사람들 발길이 아직 덜 미친 교외의 흔치 않은 생태 하천이라 걷기에도 그만큼 상큼하다. 그래서 신북 주민들은 직접 투표를 통해 율문천 생태계 보존을 지역 우선 사업으로 선정한 적이 있다. 아무쪼록 율문천 생태 보존이 주민 뜻대로 추진되길 소망하지만, 이 역시 지켜볼 일이다.

춘천 막국수체험박물관에는 막국수 만들기 체험을 즐기기 위해 아이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부모 손에 이끌려오는 아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전국 유일의 춘천 막국수체험박물관은 1층 전시관과 2층 체험실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오는 부모들은 2층 체험실의 막국수 체험을 미리 검색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1층 전시관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해설사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재미있는 해설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해설하다 보면 어른보다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게 이 분야 통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나름의 묘안은 퀴즈와 함께 그 상품으로 내어주는 사탕 한 알이다.

관람객들이 춘천 막국수 박물관 1층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맷돌이 손님들을 가로막는다. 메밀을 갈아내던 맷돌을 형상화한 조형물인데 막국수가락 모형의 목재 구조물과 함께여서 아이들에게 마치 감옥 창살을 연상시켜주기도 한다. 그래서 동료 해설사 한 분은 이 조형물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감옥 체험을 하게 하면서 즐거움을 선사한다.

퀴즈는 이 맷돌 조형물에서 시작된다. 전시관 입구 거대한 맷돌 조형물 왼쪽에는 역시 커다란 크기의 맷돌 손잡이가 달려있는데 아이들에게 이 손잡이 이름을 묻는 것이 퀴즈의 내용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이 손잡이 이름을 비교적 손쉽게 알아 맞추지만, 저학년으로 갈수록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애처로운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퀴즈 정답을 들어보았거나 사용해 보았을 테지만, 그 말이 맷돌과 관련된 단어일 것이라 고는 전혀 관련짓지 못한다.

아이들이 끝내 정답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경우 부모에게 살짝 물어보라고 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젊은 부모들 역시 정답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 놀랍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듯하다.

어쩌다 정답을 안다고 해도 ’어의‘ 또는 ’어처구니‘ 중 하나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의없다’와 ‘어처구니없다’를 막연하게 사용해오다가 그 의미가 맷돌을 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기인한 것을 알고는 매우 놀라워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어의’와 ‘어처구니’ 모두를 맞춰야만 아이들에게 사탕 한 알이 돌아간다. 이때 사탕 한 알 받아들고 날듯이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게도 엔돌핀이 팍팍 전달되어 와 덩달아 기분 좋아진다.

그런데 막국수체험박물관에는 박제된 맷돌만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그야말로 작동하지 않는 어처구니만 널려 있는 셈이다. 아이들에게 맷돌 갈아보는 체험을 실제로 제공한다면 국어 교육을 좀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