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堂 박의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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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일기

김유정 문학과 들병이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3-03 19:20
조회
140


1930년대에 활약한 춘천의 대표적 소설가 김 유정은 서른 여 편의 주옥같은 단편을 발표했다. 이 중 열두 편이 그의 고향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문학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로 평가되고 있다. 김 유정의 이런 업적을 기려 그의 생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문학촌은 명실상부한 춘천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 유정이 그의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실레마을은 당시 춘천읍에서 이십 여리 떨어진 시골로서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따뜻하고 정겨운 마을이었다. 이런 마을 분위기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많은 외지 사람들, 특히 문인과 예술인들이 귀촌해 둥지를 틀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나도 이곳에 터전을 마련해 볼 생각이었으나 땅값이 크게 올라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포기해야 했다.

실레마을 배경의 김 유정 문학을 관통하는 핵심 코드는 ‘들병이’ 일 것이다. ‘들병이’는 농번기에는 농사일을 거들다가 농한기에 들어서면 아이 들쳐 엎고, 남편 앞세워 이웃 마을로 술 팔러 나선 아낙을 일컫는다.

농한기 동네 주막에 ‘들병이’가 들면, 동네 총각들은 물론 웬만한 유부남들이 몰려들면서 동네가 술렁인다. ‘들병이’는 주막에 입주해 됫술이나 말술을 사 잔술이나 됫술로 팔아 이문을 남긴다. 그러니 ‘들병이’와 주모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다.

‘들병이’는 술만 판 게 아니라 몸까지 팔았으며 윗방이나 가까운 이웃에 남편과 아이가 함께한 것은 물론이다. ‘들병이’가 몸까지 팔았다고는 하나 삶을 위한 방편이었을 뿐, 이 일로 인해 남편이나 아이를 저버린 일은 결코 없었다. 그래서 이런 ‘들병이’를 향해 돌을 던진 사람은 당시 아무도 없었다. 그 의미도 생경한 성인지 감수성 어쩌고 하며 툭하면 성추행으로 내몰리는 이 시대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 것이다.

2004년에 성매매특별법이 도입되면서 소위 청량리 588이나 미아리 텍사스 등의 홍등가들이 철퇴를 맞았다. 그러나, 이들 홍등가들이 표면상 자취를 감춘 것과는 달리 매매춘은 오피스텔 등으로 잠입해 은밀하게 이루어지면서 소위 풍선효과라는 신조어만 탄생시켰을 뿐이다.

성매매특별법 도입과 함께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김 강자 총경이 미아리 텍사스 철거에 앞장섰던 일과 이에 항의해 길거리로 나선 매춘부들의 시위 모두 당시에는 유명한 일화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성매매 퇴출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김 강자 서장은 그 후 지방의 한 대학교수로 부임해 매매춘 양성화의 기수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매매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뿌리 깊이 존재해 온 사회 현상이다. 동서고금은 매매춘 금지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지만, 번번이 실패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매매춘은 남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요즘은 로맨스 투어라는 미명으로 여성을 주체로 한 매매춘이 카리비안 국가들을 중심으로 성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서양 일부 선진국들은 매매춘을 아예 공창제로 양성화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공창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고 독일은 혼욕을 관광상품화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까지는 공창을 합법화하고 있었다.

공창제를 합법화하는 나라들은 보건 관리를 엄격히 하고 매춘부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하여 이들의 생계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성년과 비자발적 매춘은 예외 없이 강력한 규제 대상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매매춘은 결국 관리의 문제로 귀결된다. 매매춘 금지나 양성화 주장 모두 매매춘을 관리하여 그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매춘의 피해는 여성 쪽이 훨씬 더 큰 게 현실이기 때문에 매매춘의 양성화는 여성 또는 매매춘 단속 기관인 경찰이 깃발을 들 때만이 실현 가능한 일이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인 헝가리, 아르헨티나, 프랑스처럼 우리에게도 더 많은 김 강자 총경이 출현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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