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堂 박의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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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일기

애향의 이웃들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10-01 06:34
조회
115
사랑말 탐진치 3종 세트

참새가 무리 지어 아침을 깨웠는데 이웃에서 얘들을 잡겠다고 그물을 쳐 놓은 뒤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췄다. 기가 찰 노릇이지만 가치관이 다른 시골 이웃과 다투기 싫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전에 통골 마을에 농막 지어 주말농장 삼아 잠시 왕래할 때는 이웃 할머니가 끈끈이로 다람쥐를 잡아 씨를 말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녀석들이 햇볕에 말리고 있는 이웃 농산물을 모두 먹어치운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양지바른 애향, 사랑말에 둥지를 튼 후 마을 이웃들과 한동안 잘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의 터무니없는 탐욕 때문에 이 평화가 순식간에 깨졌다. 전원 단지 내 자기 집 앞 도로를 주차장으로 무단 점용해 사용하는 것까지는 눈감아 줄만 했는데 이 도로의 소유권을 이전해 가겠다고 나서더니 어느 날 이웃 아무도 모르게 도로를 폐지하고 자기 집 대지와 합병해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로 몇 차례 전원 이웃과 갈등을 겪은 아픈 경험이 있어 사소한 일에는 끝까지 감내하려던 늙은이의 인내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순간이다.

이웃의 젊은 부부 교사가 도로 지정을 해제하고 자기 집 대지로 합병해 간 이 열 평짜리 도로는 부부 교사 집으로의 진입로이지만 늙은이 차량의 후진에도 필수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단지 내 택배 차량이나 방문 차량의 회전용 도로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목도 도로인데다 그 용도가 도로로 지정된 그야말로 단지 내 공용도로다.

이웃이 마침 부부 교사라 대화가 될 상대라서 도로 합병 시도의 부당함을 직접 얘기했건만 개발업자와 결탁하여 도로의 소유권을 이전해 간 후 공익을 폐하고 사익을 챙긴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도 사표가 되어야 할 젊은 교사 부부의 이 같은 사욕 추구 행태에 대해서는 그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받았다. 더더욱 기가 찰 일은 공익을 우선해야 할 행정 당국마저 이에 동조해 기왕에 지정된 도로를 해제하여 사익을 우선으로 챙겨준 일이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이 도로의 전후 사정이나 현장 상황도 살피지 않은 채 도로폐지 신청 이틀 만에 도로를 폐지하고 고시해주는 초특급 서비스까지 베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로를 해제해주면서 건축법의 해제 관련 조항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허가 관련 조항을 적용하는 절차적 불법까지 저질렀다.

춘천시 고위 공무원을 지낸 늙은이의 국민학교 동창은 이 도로상황을 처음 접하면서 공무원 모가지 열 개가 있어도 부족하겠다고 그 불법성을 단언했었다. 그런데 막상 불법 행위가 이루어지자 관련 공무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서 뒤로 숨어버렸다. 지역사회 공무원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고향 동창 하나 보호하다 지역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것보다 지역사회에서의 보신을 먼저 챙긴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이 작은 전원 단지 빈 터에 새집을 짓고 두 이웃이 함께 입주했다. 당연히 환영해야 할 일이건만 단지와 조화롭게 집을 지은 건너편 이웃과 달리 늙은이의 앞집은 늙은이 집 거실 앞에 위압적인 지붕을 올렸다. 집을 짓기 전에 2층만 아니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더니 다락방만 올린다고 해서 안심했었다. 늙은이 집도 아담한 다락방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락방이라고 주장하는 앞집 건물은 웬만한 2층 규모의 높이로서 늙은이가 우려한 최악의 시나리오와 마주하게 된 셈이다. 이웃은 법대로 지은 것이라고 강변하고 싶겠지만, 이웃 간의 정은 법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법은 냉정함이고 이웃은 양보와 배려 그리고 상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원 단지 중앙에 최대한 건물을 끌어 올린 이 이웃은 여유롭지 않은 공간의 늙은이 집 앞으로 출입문을 낸 후 저온창고까지 내달았다. 소음으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몰염치한 처사다. 그래서 앞집과 방음벽을 치겠다고 했더니 이게 시비가 되어 말다툼이 크게 벌어졌다. 안타까운 일은 이 다툼에서 어떤 사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옆집이 앞집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건만 이제 막 이사 들어온 이웃이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니 새로 입주한 이웃들과의 좋은 관계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좋은 이웃은 집값에 덤을 얹어 산다고 했고, 좋은 이웃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다가가는 게 도리라는 것 역시 모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웃이 상대에 대한 배려나 양보 없이 내 욕심부터 챙기니 손을 내밀어 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지바르고 전망 탁월한 사랑말은 탐욕스러운 자, 어리석은 자, 화내는 자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갈등과 미움만 가득 찬 살기 불편한 마을로 전락해 버렸다.

그 이름도 정겨운 사랑말은 춘천 박씨 시조인 박 항이 사랑채를 짓고 살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박 항은 이웃 주민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어 주민들 역시 예후고개(여우고개)서 부터 이분께 예를 갖추고 지냈다는, 전설조차 미담인 마을이다. 그러나 늙은이의 이웃은 눈앞의 사소한 이익을 먼저 챙기고, 늙은이 역시 이에 대한 분노로 소중한 이웃을 놓치고 있으니 이 어찌 딱한 일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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